오다 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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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최후 [편집]
먼저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 후, 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도망가다가 주민에게 살해[1].
카츠이에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히데요시와 충돌을 일으키다가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자결.
나가히데는 120만석의 대영주가 된 것은 좋았으나, 위암으로 사망[2].
마지막으로 가즈마스는 가나가와 전투에서 호죠군에게 대패하여 없는 사람 취급 당한데다,기록말살형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가츠이에 지지했다가 아예 쫄딱 망해 결국 실의 속에서 사망.
이 사천왕의 가문 중에 에도 시대 까지 다이묘 가문으로 남아 있던 집안은가장 수수하다는 인상이 강한니와 가문이다. 니와 나가히데의 아들인 나가시게는 히데요시에 의해 영지를 몰수당하거나,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서군에 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개역을 당하지만, 뒷날 에도사키 번, 타나구라 번, 시라카와 번의 번주가 되어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나가시게의 아들인 미츠시게의 대에 무츠의 니혼마츠 번으로 옮겨지고, 그 번주 자리를 유지하며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 다이묘로 가문을 이어나간다. 후손은 있었으나 정권 다툼에서 패해 다이묘로 남지는 못한 시바타, 아케치, 타키가와는 물론, 이 세 명의 죽음과 연관된 도요토미 집안은 완전히 멸족된 것과 비교하면 니와 가문은 꽤 유복한 나날을 보낸 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카츠이에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히데요시와 충돌을 일으키다가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자결.
나가히데는 120만석의 대영주가 된 것은 좋았으나, 위암으로 사망[2].
마지막으로 가즈마스는 가나가와 전투에서 호죠군에게 대패하여 없는 사람 취급 당한데다,
이 사천왕의 가문 중에 에도 시대 까지 다이묘 가문으로 남아 있던 집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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